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어도어 루스벨트 (문단 편집) == 가족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heodore_Roosevelt_and_family%2C_1903.jpg|width=70%]] (왼쪽부터) TR에 기대 있는 퀜틴, TR 본인, 안경을 쓴 시어도어 3세, 앉아있는 아치볼드, 흰 드레스를 입은 앨리스, 커밋, 앉아있는 후처 에디스, 에설 전 부인인 앨리스 리 루스벨트([[1861년]] [[7월 29일]] ~ [[1884년]] [[2월 14일]]) 사이에서 딸 앨리스를 두었다. 이후 후처 에디스([[1861년]] [[8월 6일]] ~ [[1948년]] [[9월 30일]]) 사이에서 5명의 자녀를 두었다. * 앨리스 루스벨트: [[1884년]] [[2월 12일]] ~ [[1980년]] [[2월 20일]] (96세) 아버지를 닮았는지 성격이 꽤 괴팍하고 [[독설가]]로 유명했는데, 가장 유명한 독설이 29대 대통령 [[워런 하딩]]을 평가한 말이다. "그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다만 멍청이었을 뿐이지'''." 그리고 친척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가족을 두고도 "3분의 2는 물러터진 [[옥수수]]죽(프랭클린을 말한다)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엘리너"라고 말했다. 그녀는 1905년에 [[대한제국]]에 [[고종]]의 초청을 받은 외교 사절 신분으로 공식 방문한 적도 있는데 유교국가에서 절대 해서는 안될 극히 무례한 행동을 일삼고 돌아가기도 했다. 대표적으로는… [youtube(40kuaceEWe0)] [[파일:external/c2down.cyworld.co.kr/download?fid=64221d64c4109802bc0c1f0c14f31d5f&name=Alice%20Roosevelt.jpg]] [[명성황후]]의 능에서 승마바지 차림으로 말채찍을 들고 조형물인 석마(石馬)를 탔다. 이 사건은 당시 대한제국 황실 의전담당차 있던 독일인 에마 크뢰벨(Emma Kroebel)이 본국에서 <나는 어떻게 조선의 황궁에 들어오게 되었는가(Wie ich an den koreanischen Kaiserhof kam)>라는 책을 펴내면서 알려지게 된다. ||“(고종 알현 당시) 그녀는 승마복을 입고 있었고 승마용 채찍을 한 손에 들고 입에는 시가를 물었다. (명성황후릉인 홍릉에 방문해서는) 동물 석상에 관심을 가졌는데, 특히 말 석상을 보고서는 말에서 내려 재빨리 석마(石馬) 위에 올라탔다. 그토록 신성한 곳에서 그토록 무례한 짓을 저지른 것은 한국 외교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앨리스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1909년 11월 16일자 [[뉴욕 타임스]]에서 앨리스의 무례한 행동에 대한 기사가 실리자마자 다음날, 앨리스의 남편인 니컬러스 롱워스(Nicholas Longworth) 공화당 의원이 내용이 전부 다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코넬 대학교]] 도서관에 근무하던 한국인 사서가 관련 사진을 발견함으로서 앨리스가 외교사 무례의 신기원을 이룩하고 간 것이 사실임이 드러났다.[* 명성황후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제쳐두고라도 당시 현 황제(고종)의 황후이었던 사람의 무덤가에서 예를 갖춰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능의 조형물에 올라타 사진을 찍은 것은 정말 무례한 행동이 맞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당시 앨리스와 외교 사절단은 이미 일본에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고 대한제국에는 고종이 초대해서 어쩔 수 없이 예의를 차릴 겸 들른 길이었다.[* [[네이버 웹툰]] [[조선왕조실톡]]에서도 이 에피소드가 실려있다.] 고종과 각부 대신들은 저런 앨리스를 인천에서부터 맞이해 서울에서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출국할 때까지 극진히 대접했다. 앨리스는 고종이 서글프고 애처로웠다는 말을 남겼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9201451741627|고종의 융숭한 대접과 앨리스의 행적 자료]] 그녀는 대한제국을 방문하기전 [[청나라]]를 방문하여 [[서태후]]도 만났는데 서태후를 가리켜 “중간 정도의 신장에 치파오 걸친 모습이 수려하고 장엄했다. 대국 통치자의 풍모가 넘치는 걸출한 여성이다.” 라고 기록하였다. 앨리스는 서태후와의 만남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91444|#]] 저런 모습처럼 어린 시절에는 워낙 왈가닥이라서 [[백악관]]에 손님이 찾아오면 "미합중국 대통령은 맨날 자식을 때려요!"라고 소리지르는 장난을 즐겼으며, '''[[뱀]]'''을 목에 걸고 나타나는 바람에 백악관 방문객들을 깜짝 놀래곤 했다고. 그런데 앨리스가 아니라도 루스벨트의 자식들은 백악관에 있을 때 모두 나이가 어렸다. 그런데 형제들이 아버지를 닮았는지 하나같이 말썽꾸러기라 숱한 장난으로 백악관을 난장판으로 만들어서 영부인과 백악관 직원들의 속을 뒤집어놓곤 했다고 한다. 이렇듯 그는 미국의 대통령뿐 아니라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의 역할도 백악관에서 함께 수행해야 했다. 루스벨트 본인도 "저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일 수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제 딸 앨리스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다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꽤 악동이었던 그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 정도니 말다한 셈이다. 말년에 누군가가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묻자, '''"실리보다는 허세만 가득찬 양반이었죠."'''라고 아버지를 디스했다. 15살 연상으로 훗날 미국 하원의장을 역임한 니컬러스 롱워스와 결혼해서 폴리나 롱워스라는 딸을 낳았는데, 앨리스가 너무 장수해서 폴리나와 폴리나의 남편(앨리스의 사위)을 먼저 보내는 슬픔을 보게 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rigadegeneral_Theodore_Roosevelt%2C_Jr.jpg]] * 장남 시어도어 3세[* 이 문서에 소개된 아버지의 풀네임이 시어도어 루스벨트 2세(주니어)이니 그 아들은 3세. 덤으로 미국 대통령 중에도 풀네임이 주니어 혹은 ○세인 대통령들이 은근 있는 편이다.]: [[1887년]] [[9월 13일]] ~ [[1944년]] [[7월 12일]] (56세) 아버지 못지 않은 풍운아였다. 1, 2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한 베테랑이자 하딩-쿨리지 정권에서 해군성 차관, 필리핀 총독, 푸에르토리코 총독을 역임한 공화당의 거물급 정치가였는데, 2차 세계대전에 대령으로 참전, 북아프리카와 시칠리아 전투를 거치며 준장까지 진급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제4보병사단의 부사단장이던 시어도어 3세는 자청해서 제1파로 상륙했는데, 제1파의 최고령, 최선임 미군이었다고 한다. 당시 오마하 해변에 상륙할 예정이었지만 유타해변 인근에 수백명의 병력들과 잘못 상륙했다. 현장에서 장교, 참모진들이 최선임자인 그에게 "장군님, 이제 뭘 어떡해야 합니까?" 라고 물어보았다. 장교들은 병력들을 집결해서 유타나 오마하에 있는 병력들을 지원하자 같은 구체적인 명령을 원했겠지만 주변을 둘러보고는 오히려 자신들이 잘못 상륙한 곳이 독일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기 좋은 곳임을 눈치채고 피는 못속인다고 루스벨트 집안답게 '''"뭘 어떡하냐고? 여기서부터 전쟁을 시작하는거다!"''' 라고 외치곤 권총을 들고 뛰어다니며 유타 해변에 상륙한 병력들을 집결시켜 자신들이 발견한 독일군의 허점으로 돌격,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성공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그러나 상륙 33일 만에 심장마비로 사망, 결국 사후에 명예 훈장을 수훈받았다. 아버지와는 달리 먼 친척뻘 되는 FDR을 싫어한 것으로도 유명했다고. 슬하에는 그레이스, 시어도어 4세, 코닐리어스, 퀜틴 주니어가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ermit_Roosevelt_1926.jpg|width=30%]] * 차남 커밋: [[1889년]] [[10월 10일]] ~ [[1943년]] [[6월 4일]] (53세) [[제1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했고, [[제2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했지만 2차 대전 중에 전쟁에 대한 [[우울증]]과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리다가 알래스카에 파견 나가있던 중 그곳에서 자살했다. 슬하에 커밋 주니어, 조지프, 벨, 더크가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thel_Roosevelt_Fall_1901.jpg]] * 차녀 에설: [[1891년]] [[8월 13일]] ~ [[1977년]] [[12월 10일]] (86세) 어그로를 끄는 이복 언니, 세계대전에 참전한 오빠들과 남동생들에 비해 평범한 생을 살다 갔다. 리처드 더비와 결혼해서 리처드 주니어, 이디스, 세라, 주디스를 낳았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rchie_Roosevelt_WW-I.jpg]] * 삼남 아치볼드: [[1894년]] [[4월 10일]] ~ [[1979년]] [[10월 13일]] (85세) 두 형처럼 1, 2차 대전에 모두 참전했다. 루스벨트의 아들들 중 2차대전 이후로도 살아남은 유일한 아들이다. 아치볼드 주니어, 시어도라, 낸시, 에디, 재커리를 두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Quentin_Roosevelt_in_Uniform_1917.jpg]] * 사남 퀜틴: [[1897년]] [[11월 19일]] ~ [[1918년]] [[7월 14일]] (20세) 심한 장난꾸러기였는데 그는 5, 6명 정도의 친구들을 데리고 백악관에서 말썽을 부렸고 심지어는 찢어 뭉친 종잇조각을 백악관에 걸린 대통령 초상화에 붙여 놓았다가 루스벨트에게 크게 혼난 적도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던 중인 1918년 7월 14일 전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